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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식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후기

by 슈필1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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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대표 소장품 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3월 15일까지 전시예정으로 뒤늦게 관람을 하고 왔습니다. 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 작품들과 그들이 후원했던 작가의 작품들, 그리고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설명자료와 오디오 가이드 설명을 곁들여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요 ㅎㅎ

 

중세로부터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왕가는 어디일까요? 

합스부르크는 1273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역사의 중심으로 진출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뒤 황제에서 물러난 카를 1세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간 유럽의 정치, 경제, 예술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들의 후원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가문의 후원은 합스부르크 사람들이 가진 예술 사랑과 예술품 수집에 담은 남다른 철학 때문입니다. 

 

1. 설계자 막시밀리안 1세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 1492년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갑옷. 강철,황동에 도금,가죽

1508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동맹을 맺어 제후들이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세웠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으로 부르곤트 공국을 얻었고, 아들과 딸은 스페인 왕실의 공주, 왕자와 결혼시켜 스페인 왕국 전체와 식민지 영토까지 얻었습니다. 손자와 손녀는 보헤미아 왕실과 결혼시켜 동유럽을 손에 넣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진정한 설계자였던 셈입니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갑옷 1547년. 현존하는 르네상스식 갑옷 세트중 가장 큰것으로, 총 90개의 부속으로 구성되어있다. 옛 오스트리아의 상징인 독수리가 금박으로 장식되어있다.

 

2. 루돌프 2세 

루돌프 2세의 초상
루돌프 2세의 리본장식 갑옷,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아들 루돌프 2세를 위해 제작, 1571년경, 강철,금,황동,직물, 가죽

루돌프 2세는 예술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황제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스페인 왕궁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탐독하며 성장했습니다. 1576년 황제가 된 후 수도를 프라하로 이정하여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을 불러들였고, 프라하를 보헤미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루돌프 2세는 다양한 예술품을 수집해 '예술의 방'에 전시했고 이 수집품들은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야자열매 주전자. 16세기 후반. 야자열매, 은, 도금. 전세계에 야자열매 장식품이 6점 있는데, 이 중 3점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품이다.

 

3.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초상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빈 미술사 박물관 회화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표 수집가입니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안목이 뛰어났던 대공은 궁정화가, 동료 수집가와 함께 평생 1,400여 점이 넘는 회화를 수집했습니다. 수집품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명화가 다수 포함되어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품의 명성을 높였습니다. 

 

루벤스, 1620~ 25년경,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 정물과 동물은 프란스 스네이데르스가 그렸다.
얀 스테인 1670년경,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4. 마르가리타 테레사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1656년경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스페인 왕 필리페 4세와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천사 같은 모습으로 아버지 필리페 4세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주는 훗날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게 되고,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22세에 단명합니다.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 1679 ~ 83년, 은, 루비,에메랄드,토파즈,다이아몬드. 아폴로와 다프네 이야기가 있는 술잔

 

6.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 카를 6세가 사망한 뒤 1740년 오스트리아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신성 로마제국 황제는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745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신프란츠 1세로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프란츠 1세는 정치에 큰 뜻이 없어 사실상 마리아 테레지아가 모든 국정을 운영하며 실권을 가졌습니다. 

 

셔벗용 식탁장식, 조가비, 달팽이 껍데기, 금. 1736~40년경, 카를 6세 황제부부와 테레지아를 포함한 세딸, 사위 프란츠 슈테판의 초상화가 장식에 새겨져 있다.

 

7. 마리 앙투와네트 

마리 앙투와네트의 초상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입니다.  마리 앙투와네트로  잘 알려진 마리아 안토니아는 1774년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왕위계승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38세 생일을 2주 앞두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8. 프란츠 요제프 1세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초상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수석총 1857년 / 튀니지왕 시디 모하메드 2세가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것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부터 68년간 오스트리아 제국을 다스렸고, 합스부르크 왕가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민족주의가 급부상하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1867년 오스트리아 - 헝가리 이중 제국 시대를 열어 대외적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1857년에는 수도 빈의 도시확장 프로젝트를 명령하여 장장 30년 동안 도시 빈을 현대화했습니다. 반지모양의 도로인 링슈트라세 Ringstrasse 를 만들고 도로를 따라 빈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지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건물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지은 빈미술사박물관입니다. 

 

빈 미술사 박물관

 

9. 오스트리아에 전한 조선의 마음 

조선의 갑옷과 투구

1892년 오스트리아와 조선은 수호통상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건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었습니다. 수교 선물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는 1894년 합스부르크의 수집품으로 등록됐고, 13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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